장기의 역사

장기는 우리나라 전통의 고유문화 유산입니다.

장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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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는 청·홍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 열 여섯 개씩의 기물을 가지고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입장에서 작전을 구상하고 수행하여 적장을 포위하고 옥쇄를 탈취하여 승리하는 놀이이다. 장기는 BC 200 ~ AD 300년 무렵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인도의 불교도 즉 승려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기(禁忌)로 하는 그들의 계율 때문에 인간 본연의 파괴 본능을 달래고 수도(修道)를 하는 시간 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어 버리고자 전쟁을 모의로 한 소재(素材)로 장기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버마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대국(古代國) 이었던 타이링의 한 왕비가 발명한 것이라 주장한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아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궁리 끝에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장기라는 설도 있다.
또 인도 고대왕국의 어떤 왕이 바라문의 고승에게 <생각을 깊이하고 앞을 내다보는 슬기를 가지게 하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놀이를 만들라> 고 하자, 고승이 이 조건에 걸맞는 전쟁형식을 본떠 장기를 창안했다는 설도 있다.


서양 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인도에서 지금의 장기의 시조(始祖) 인 것이 발명 되었는데 그 최초의 명칭은 <차두랑카>라는 산크리스트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차둘(chatur)은 넷(四), 아가(Anga)는 원(員)을 뜻하므로 이는 군대의 네 가지 구성원 차(車), 마(馬), 상(象), 보졸(步卒) 이니 전군(全軍)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2세기에 이르러 4인제였던 장기는 2인제로 바뀌었고, 놀이방법도 주사위를 던져 장기짝을 놓던 종래 방식에서 오로지 지혜를 짜서 두는 방법으로 변하였다.

장기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唐)나라 말기에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12세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비슷한 놀이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육조 시대 이전의 것은 중국 학자 유신의 상희(象戲) 에 나타난 문헌으로 미루어 지금과는 다름을 알 수 있고, 그 이후 당(唐) 나라의 중증유 의 현경록(玄經錄)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 행마법이 지금과 비슷하며, 송대(宋代) 유준촌(劉俊村)의 상혁시(象奕詩)에는 포(砲), 상(象), 마(馬), 차(車), 사(士), 졸(卒) 등 지금과 같은 말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가장 흡사함을 알 수 있어 장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같춘 것은 송대 이전일 것이라 추측된다. 또 잠확유서에는 기원전 1천 8백년경 하의 폭군 결왕의 신하였던 오증이 장기와 바둑을 만들었다고 전하며 <유월총보>에는 진대 사람인 도간의 고사가 적혀 있는데 은나라 폭군 주왕이 만들었다고 전한다.